리뷰/도서

[나를 잃어버린 사람들] '나'는 무엇인가?

fun_teller 2023. 5. 7. 09:11

웹서핑하다 알게 되었는지,

아니면 유튜브 보다가 알게 되었는지(요즘 책 소개하는 유튜브도 추천 영상으로 많이 뜨더군요)

모르겠지만, 나를 잃어버렸다는 메시지에 흥미가 가서 찾아본 책입니다.

 

올해 3월에 나온 책이던데, 이 정도 신간이면

1-2주에 한 번 도서관에 가는 사람이 쉽게 구할 수 없는 책인데도

운 좋게 제가 가는 날 있었습니다. ^^

 

나를 잃어버린다는 것이 어떤 느낌일까? 이미지출처) 알라딘

 

이 책은 현대의학에서 알아낸 여러가지 뇌관련 질환 사례들을 소개하면서

'자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을 갖고 있습니다.

 

코타르 증후군, 본인의 존재를 부정합니다.

알츠하이머병, 본인의 기억을 잃어버립니다.

신체통합정체성장애(BIID), 본인의 신체가 남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떼어내고 싶어합니다.

조현병,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나의 몸을 조종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인증, 지금 내 몸이 겪는 경험이 내 것 같지가 않습니다.

자폐증, 나와 남의 구분을 하지 못합니다. 남의 마음을 읽지 못합니다.

유체이탈(혹은 도플갱어 효과), 내가 갑자기 몸에서 빠져나와 나를 바라봅니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 나를 바라봅니다.

황홀경 간질, 발작이 일어나면서 나는 천국을 경험합니다.

 

알츠하이머, 조현병, 자폐증은 익숙하게 들어본 질환이었는데,

코타르, BIID, 이인증 등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자신의 신체 일부를 잘라내고 나서 해방감을 느꼈다는 BIID에 대해서는 공포까지 느껴졌네요.

 

알츠하이머, 기억을 잃어버린 나, 치매 증상을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의 존재 의미를,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기억에만 둔다면...

치매에 걸려버린 '나'는 

죽은 거와 똑같은 거겠죠? 아니, 그저 '나'를 잃어버린 '나'가 되는 건가요?

예전에 재미있게 봤던 영화 오블리비언이 생각납니다.

여러가지 메시지들이 있지만, 저에게 가장 강하게 다가온 메시지는...

"내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복제인간은 과연 '나'인가?"

"자신이 복제라는 자각이 없다면, 그 녀석은 '나'라고 믿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복제인가 원본인가?"

도플 갱어? 복제 인간? 나는 원본인가? 출처) 영화 오블리비언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기억을 가지고 있는 나의 '복제'도 사랑하겠지? 출처) 유튜브, 진솔한리뷰
52번째 복제란 뜻이겠죠? 영화를 볼 때는 이 의미를 놓쳤습니다. 출처) 유튜브, 진솔한리뷰
52번째 복제보다 앞선 복제의 딸이겠죠? 이 딸에 대한 기억까지 심어졌다면?? "I'm your farther." 출처) 유튜브, 진솔한리뷰
진짜 '잭 하퍼'는 이미 없지만, 이 복제는 '잭 하퍼'의 기억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출처) 유튜브, 진솔한리뷰

영화 오블리비언에서 나온 마지막 52번째 잭 하퍼는 

내가 살아온 역사를 기억하고 있는 '나'(이 책에선 서사적 자아라고 표현한 것 같습니다.)입니다.

만약 이처럼 기억(서사)을 이어가는 복제가 있다고 가정하면

서사적 자아는 진정한 '나'는 아닌 것 같네요.

혼란스럽습니다. ㅠㅠ

"지금 이 순간" 나의 존재는 뭘로 증명될까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Cōgitō ergo sum. I think, therefore I am.", 르네 데카르트

저는 어릴 때(최초의 기억은 1981년 유치원생때였습니다. ㅎㅎ) 죽음을 정말 두려워했습니다.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자각할 수 없이, 내가 없이도 세상이 돌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데카르트의 유명한 존재의 정의를 어릴 때도 어렴풋이 느꼈나 봅니다.

요즘도 죽음을 두려워 합니다. 

예전과 달라진 점은 영원불멸(증명은 못하겠지만)을 어렴풋이 느끼기에,

'나'라는 존재의 사라짐에 대한 공포는 덜한데,

이 세상을 떠남(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겁니다)으로써 슬퍼할 주위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기억을 잃어버린 내가 여전히 존재한다면,

주위 사람들은 그래도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걸까요?

서사적 자아는 유실되었지만, 여전히 몸뚱아리는 그대로이면, 내가 존재하는 걸까요?

아래 기사를 보시면, 세포가 계속 교체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 몸은 1초에 380만개의 세포를 교체한다

하루 3300억개...질량으론 하루에 80g 혈액세포가 86%...12%는 장 상피세포

www.hani.co.kr

 

기억은 잘 안나는데, 7일? 7달? 7년?이 지나면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완전히 그 이전과 다르다고 합니다.

몸뚱아리는 그대로인 것 처럼 보이지만, 이것을 이루는 세포는 완전히 다른 거죠.

뇌도 마찬가지겠죠? 뇌의 조직을 연구해서 우리의 의식이 모두 뇌로부터 온다고만 믿을 필요가 있을까요?

 

자폐증은 유명하죠. 제가 가장 처음 접한 자폐증상을 보인 사람(환자라고 말하기 미안합니다)은

영화 레인맨의 더스틴 호프만이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고 비디오 테이프를 돌렸는데, 완전히 몰입해서 봤던 기억이 납니다. ^^

자폐증을 앓고 있는 천재, 더스틴 호프만 출처) 영화 레인맨

 

포레스트 검프를 빼 먹으면 섭섭하죠. ^^

이 영화는 외부 상황,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을 할 수 없는(자폐증, 아스퍼거 증후군의 전형적인 증상)

완전한 관찰자로서의 포레스트 검프의 눈을 통해

미국 근대사의 추억과 향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초인적인 포레스트 검프의 집중력에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맛갈나게 이어져서

긴 러닝타임(2시간 22분) 동안 전혀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해 주고, 때로는 눈물이 날 만큼 감동을 줍니다.

 

자폐증 덕(?)에 완벽한 관찰자로서 미국 근대사에 대해 이야기 해 주는 포레스트 검프 출처) 영화 포레스트검프

 

자신의 아이가 정상인지 제니와 통화할 때 물어보는 장면에서 영화 '포레스트 검프'가 허구로 느껴지긴 했습니다만,

(자폐증상이 있는 사람은 그런 걸 궁금해 하지 않을 겁니다. 정상이든 아니든 받아들일 뿐이겠죠.)

그건 영화를 다 보고나서 따져볼 때의 이야기지, 실제 영화에서는 또다른 감동 포인트였습니다.

저도 첫 아이 태어날 때 제일 걱정했던 것이,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태어났냐 였으니까요.

 

타인과 주변 환경에 대한 감정이입을 한다는 것 자체가 '나'와 '남'의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자폐증은 '나'를 자각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내가 너고, 너가 나다."

자폐증을 비롯한, 이 책에 나오는 여러가지 증상들은 

'나'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이인증, 유체이탈, 간질(환각) 등에 대해서도 할 이야기가 많은데 너무 길어져서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원래 그런건데, 몸에 속박되면서 그러지 않도록 강력하게 제어된 것이,

몸으로부터 자유로와지면서 해방되는 것이 이들 증상이 아닐까?"

8장의 간질 사례 막바지에 유명한 '몰입, Flow'를 소개합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을 '삶에 완전히 관여하는 과정이자 기쁨과 창의력'으로 정의합니다.

다들 뭔가 재미있게 하다가 넋을 놓고 정신이 팔려 있었던 경험 있으시죠?

그게 바로 몰입이라는 겁니다.

"넋을 놓고 정신이 팔려 있었던"이 바로 "나를 자각하지 못하는"과 비슷한 거 아니냐!?

라고 작가는 지적합니다.

 

"자의식을 잃는다는 것이 자아를 잃는다는 것은 아니다. 의식의 문턱 밑으로 떨어지는 것은 바로 자아의 '개념'이다. 우리가 누구인지 자신에게 설명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풀어버리는 것이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

위 문장을 인용하면서 작가는 덧붙입니다.

"여기서 잃어버리는 자의식, 자아의 개념은 서사적 자아이다. 최소한의 자아는 온전히 존재하고 활동한다."

최소한의 자아라는 표현을 썼지만, 그것마저도 존재하는 것일까요?

에필로그에서 무거운 메시지를 던지면서 끝을 냅니다.

(사실 프롤로그에서도 같은 메시지를 던졌던 것인데, 책을 다 읽고서야 알아챘습니다. 이 바보!)

 

"애초에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목차입니다.

 

프롤로그 무엇이 ‘진짜 나’인가?

1장.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남자

자아란 무엇이며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2장. 나의 이야기를 모두 잃어버렸을 때

알츠하이머병이 앗아가는 ‘나다움’의 재료, 기억

3장. 한쪽 다리를 자르고 싶은 남자

머릿속 ‘나’의 지도가 망가지면 벌어지는 일

4장. 내가 여기에 있다고 말해줘

조현병이 드러내는 자아의 빈자리

5장. 영원히 꿈속을 헤매는 사람들

자아와 일상생활에서 정서가 하는 역할

6장. 자아의 걸음마가 멈췄을 때

자폐증이 자아 발달에 관해 말해주는 것

7장. 침대에서 자기 몸을 주운 사람

유체이탈, 도플갱어, 그리고 ‘최소한의 자아’

8장. 모든 것이 제자리에

황홀경 간질과 무한한 자아

에필로그 아무 데도 없고 어디에나 있는 ‘나’

옮긴이 후기 철학이 묻고 뇌과학이 답하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