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과학자입니다.
전공분야가 공학이긴 하지만, 쓰는 도구가 수학과 기초과학(물리, 화학)이기 때문에
과학자라 불러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인 제가 이 책을 집어든 건, 일단 만화책이고,
책 디자인이 제 취향에 딱 맞아서 입니다.
미술에 문외한이라 왜 맞는지 설명은 불가하지만
마음에 딱 들었습니다.
그래비티 익스프레스의 글/그림 작가는 조진호 님인데,
민족사관고등학교의 생물 선생님이셨답니다. 헉!
생물 선생님께서 그림도 이렇게 잘 그리고,
무엇보다 중력에 관한 물리학의 역사를 단순히 따라가는 것이 아닌,
시대를 지배한 이론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과학자(책에서는 철학자란 표현이 더 많이 나오고 그것마저 아주 적절해 보임!)들이 어떤 의문을 가지고,
어떻게 그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과정을
진짜 물리학자들 못지 않게(보다 더...라고 말하고 싶긴 하지만 존중의 뜻으로 이렇게만)
잘 풀어낸 것에 경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제 분야 대가 교수님의 연구실에서 나온
잘 정리된 리뷰 논문(review paper)을 읽어 나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고대의 우주관부터
피타고라스, 아리스토텔레스, 케플러, 갈릴레이, 뉴튼, 아인슈타인까지!
(이 외에도 많은 과학자, 철학자들이 나옵니다. 특히 데카르트가 인상적...)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각각의 시대를 풍미한 우주관을 만들어왔고,
그 우주관에서 생기는 의문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새루운 시대의 우주관을 만들어 나가는 과정을
너무나 잘 표현한 작품입니다.
그래비티 익스프레스는 명장면을 계속해서 보여 주지만,
개인적으로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을 두 가지만 꼽자면...
뉴튼이 선배 과학/철학자들의 이론을 적절히 취사선택하여
중력의 비밀을 풀어가기 위해 수식을 만들고, 이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한번 실패했다가, 지구의 크기에 대한 정보가 수정되었을 때
수식이 제대로 맞아들어 기뻐하는 장면에서
과학자로서 수식과 실험으로 가설을 검증해 가는 제 경험이 생각나 미소짓게 만들었고...
(그나저나, 논문을 좀더 써야 하는데...이렇게 블로깅 하면서 놀아도 되나...ㅠㅠ)
또 하나는
만유인력 공식으로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왜 중력이 작용하는 지 이유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면서
("말은 되는데 이해가 안된다!")
절대 시간과 공간의 개념으로 얼버무리(죄송합니다. 뉴튼 쌤...ㅠㅠ)면서
본인의 시대를 마무리하고,
아인슈타인이 동시대의 연구결과(빛의 속도는 일정!)와
과거 선배들의 유산을 근거 삼아
머리 속에서 수행한 다양한 사고실험으로 풀어나가는 후반부 장면입니다.
이것도 저의 경험 상 연구하다가
현상의 규칙성은 알아냈는데,
왜 그런지 몰라서 그걸 밝혀내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이런저런 실험과 수식을 활용한 모델링 등을 통해 답을 찾아내는 과정과 비슷하여
좋았습니다. ^^
저처럼 과학자인 사람,
과학자를 꿈꾸는 사람,
둘 다 아니더라도 호기심이 많은 사람,
모두에게 좋은 책이라 평가하고 싶구요,
제가 지금까지 본 과학 만화책(뿐 아니라 모든 도서) 중에서
단연 최고의 작품입니다.
책 서두의 작가 소개를 보니
조진호 님의 또다른 작품은 본인의 전공을 살린
"게놈 익스프레스"라고 하네요.
꼭 봐야겠습니다. 저는 생물에는 문외한이지만, 기대됩니다. ^^
그런데, 검색해보니 더 많습니다. 야호!
마지막으로 목차...
추천의 글
작가 서문 : 한 편의 소설 같은 중력의 역사
프롤로그 : 무엇이 떨어지게 하고 무게를 가지게 하는가?
1. 적응기 : 중력! 극복의 대상에서 이해의 대상으로
2. 떨어질 곳을 잃어버리다 : 우주가 굉장히 크다
3. 자기 위치로 떨어진다 : 질서 정연한 우주
4. 그것이 아니오 :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한 반박
5. 떨어진다는 것은 끌어당기는 것 : 지상의 언어로 낙하를 설명하다
6. 끌어당긴다는 어떤 추측도 할 수 없다 : 천상의 언어로 낙하를 분석하다
7. 맞다, 끌어당긴다! : 뉴턴이 끝내다
8. 승리 뒤의 씁쓸함 : 말은 되는데 이해가 안 된다
9. 전부 다 착각 : 오히려 밀어낸다는 게 맞다
에필로그 : 인류를 움직인 가장 단순한 질문
감사의 글 : 《그래비티 익스프레스》개정판을 내며
중력사 연표
주요 등장인물 소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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